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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김 부장의 事記> 3-5. 구조조정 시나리오 발표
급작스럽게 팀장급 이상 간부 전원회의가 소집되고, 김 부장은 심란한 마음으로 발길을 대회의실로 향했다. 그는 구조조정 방안이 대표에게 보고되지 않은 채 공개적으로 발표되는 것이 못내 불쾌했다. ​‘박 상무의 전횡이 너무 심하다, 심해.’ ​일부러 일찍 도착한 회의실 앞 몇 명의 팀장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성거리고 있다. 김 부장을 보자마자 인사팀 조 팀장이 다가온다. ​“부장님, 이건 아니잖습니까? 구조조정안이 어떻게 사전에 논의도 없이 발표될 수 있단 말입니까?” ​“아니, 스텝 부서에도 협의가 없었어요?” ​“저희도 금시초문입니다.” ​‘음…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구나.’ ​난감한 표정의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. ​“그런데… 부장님, 요즘 대표님께서 뭐 하시는지 아십니까?” ​“네? 그게 무슨…” ​“요새는 출근을 거의 하지 않으십니다. 결재는 전자결재로 하고 계시는데 보고를 드릴 건이 있는데 도통 뵐 수가 있으니…” ​‘그래, 대표님은 주로 O 상무 별장에 있으니까…’ ​“나도 따로 들은 바가 없어요.” ​복도 쪽에서 박 상무가 이 팀장을 대동하고 걸어온다. 자태가 자못 개선장군 저리가라 식이다. 이윽고 회의가 시작됐다. 실상 일방적인 확정안 발표나 진배없었다. 주요 골자는 이랬다. ​- 구조조정 시나리오는 상황에 따라 Worst(최악), Bad(나쁨), Not Bad(중간)로 가정하여 작성함 - A 사의 특성상 매각할 고정자산은 거의 없음. 현금 유동성은 Worst일 경우 12개월, Bad일 경우 18개월, Not Bad일 경우 30개월을 버틸 수 있는 것으로 예상함 (구조조정 없이 현재 체제를 유지한다는 가정 하) - Worst 상황일 시 인력 40% 감축, Bad 상황일 시 인력 25% 감축, Not Bad 상황일 시 15% 감축을 산정함 - 상황을 봐 가면서 회사 투자자산 중 가장 가치가 있는 S 통신사 주식 일부 또는 전부를 매각할 것을 검토할 수 있음 ​대강 예상했던 바와 유사하다. 첨예하게 논란이 되는 것은 감축되는 인력이 어느 부서냐는 것이었다. 박 상무의 발표 내용은 대부분 스텝 조직에 집중됐다. 사업부 인력은 극히 일부만 대상이었다. ​ ​“에… 위기 상황에는 오버헤드(overhead: 공통 부서 또는 공통 비용) 감축이 우선인 건 다들 알지요?” ​박 상무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문을 연다. ​“이번 기회에 오버헤드 부서를 대폭 줄여야 합니다. 시나리오와 상관없이 무조건 50%를 없앨 생각입니다.” ​“박 상무님, 아직 금융위기 여파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?” ​CTO(최고기술책임자) 도 상무가 발끈하고 나선다. 이 팀장이 다른 자료를 스크린에 띄운다. ​“도 상무님, 인력 변동 현황을 보시죠. 창사 이래로 이직을 포함한 전사 인력 변동률은 18.5%였습니다. IT 부서는 얼마였을까요? 불과 6.9%였습니다. 이게 뭘 의미하고 있을까요?” ​“아니, 이 팀장! 그건 인하우스(기업 내부) 개발과 운영을 담당해왔기 때문 아닙니까? 오히려 인력관리를 잘했다고 칭찬받을 일인데요?” ​“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. 여기 IT 부서에서 퇴사한 사람들을 살펴보시죠. 조OO 수석, 하OO 책임, 유OO 선임… 하나 같이 신기술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. 이런 직원들이 나가면서 IT 부서는 현실에 더욱 안주하게 됐습니다.” ​“그러니까, 그건 IT 부서 사람들 책임이 아니죠! 우리 회사 사업 구조가 그런데 어쩌겠습니까?” ​도 상무와 이 팀장의 논쟁이 격해지자 박 상무가 불쑥 나선다. ​“도 상무님, 말씀 잘하셨습니다. 그 문제 되는 ‘사업 구조’를 바로잡으라고 내가 여기 있는 겁니다. 아시겠어요?” ​도 상무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지만 제대로 응수를 못 한다. ​“그리고 말입니다. 요즘 기술의 변화를 생각하셔야죠. IT는 이제 아웃소싱이 대세에요, 단순히 무사안일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.” ​‘핵심이다! 내가 구조조정 시나리오를 짰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. 구조조정을 하다 보면 내부요인에만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. 하지만 바뀐 외부 환경까지 살펴야 내부를 설득하고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.’ ​​ ‘아마도 이건… 이 팀장 머리에서 나왔을 거 같은데….’ ​“대략 방향은 이렇습니다. 다들 아시겠죠?” ​회의실에는 참석자들이 눈알 굴리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. 그러다 인사팀장 조 팀장이 나선다. ​“스텝 부서를 줄이자는 말씀은 알겠습니다. 하지만 사업부서 인력 감축이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. 이건 형평성 차원에서 분명 문제가 될 사항입니다. ​“구조조정을 하더라도 돈은 벌어야 할 거 아냐? 돈 버는 조직을 왜 건드리냐? 어?” ​"인사팀장으로 상당히 난감합니다만, 이 부분은 대표님의 결심을 받도록 하겠습니다.” ​“이봐, 조 팀장! 이건 그룹의 오더야! 대표가 뭐라 할 게 없는 거라고!” ​“이 회사는 대표님이 최고 결정권자십니다. 이렇게 결정될 수 없는 사안입니다!” ​조용한 성격의 조 팀장이 평소와 달리 핏대를 올린다. ​ “쯧쯧쯧… 이 불쌍한 친구야.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구먼. 어이구… 자, 이걸로 오늘 회의는 마칩시다. 최종 결정안은 조만간 공지될 겁니다. 후속 조치를 빈틈없이 해주기를 바랍니다.” ​박 상무가 일단의 무리를 끌어 회의실을 나가 버린다. 도 상무, 인사팀장 등이 김 부장 쪽으로 다가온다. 하지만 아무도 무거운 적막을 깨뜨리는 사람이 없다. ​‘음… 빨리 신사업기획을 마무리 지어야겠어. 구조조정으로 회사가 쑥대밭 되기 전에…’ ​회의실을 나오자마자, 최 차장에게 전화를 건다. ​“아, 최 차장, 지금 바로 좀 봅시다.” 사진 출처: @kues1 at freepik ​ 김진영 23년 직장 생활, 13년 팀장 경험을 담아 <팀장으로 산다는 건>을 2021년 4월에 출간했다(6쇄). 삼성전자, 현대자동차, SK하이닉스, LG이노텍, CJ대한통운, LX판토스 등에서 리더십 강의를 했다. 한라 그룹 리더를 위한 집단 코칭을 수행했으며, '리더십 스쿨' 코칭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. 6월 말 <팀장으로 산다는 건 2> 출간을 앞두고 있다. http://leadersclub.tistory.com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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